사미인곡이 물려받은 그 노래(feat. 여성 화자) | EBS 2027 수능완성 문학 고전가사 조위 「만분가」
무오사화로 유배된 조위가 지은 최초의 유배 가사 「만분가」. 자신을 하늘에서 쫓겨난 존재이자 임과 헤어진 여성 화자로 형상화하며 억울함과 연군의 정을 어떻게 드러내는지 읽어봅니다.
안녕하세요 SN 아카데미입니다.😊
SN 오리지날 67번째 작품은, 1498년 무오사화 뒤에 지어진 조위의 고전 가사 「만분가」입니다.
제목의 ‘만분(萬憤)’은 만 갈래로 쌓인 분함이라는 뜻으로, 억울하게 귀양길에 오른 마음을 선왕에게 하소연한 우리나라 최초의 유배 가사죠. 화자는 자기를 하늘에서 유배 온 존재로 세우고 “하늘 위 백옥경 열두 누각 어디인가”라며 올려다보는 물음으로 시작하는데, 이렇게 임금을 옥황상제에 겹쳐 놓는 방식이 작품 끝까지 이어집니다.
임금을 향한 마음은 임의 옷을 짓는 여인의 목소리로 바뀌고, 뒷날 정철의 「사미인곡」이 바로 이 틀을 물려받습니다.
유배의 계기가 된 사화는 끝내 직접 언급되지 않습니다. “장안 어젯밤에 무서리 섞어치니” 한 줄로 하룻밤 사이 서울에 몰아친 서리가 될 뿐이죠.
화자는 굴원과 가의, 공자와 백이를 차례로 불러와 “도척은 온전히 놀고 백이는 아사하니”라며 제 억울함을 옛사람의 일에 겹쳐 놓고, 죽어서 소나무와 학과 매화가 되어서라도 임에게 닿으려 합니다.
그러나 그마저 ‘옥황상제 처분’이라 말하죠. ‘억울함은 어디에 가서 쌓이는가’를 되묻게 만드는 최초의 유배 가사를 SN 오리지날과 함께 만나보시죠.
영상 타임라인
낯선 문학 작품도 한 번에 뚫어내는 완벽한 맥락 파악과 감각적인 영상이
여러분의 수능 1등급을 향한 가장 확실한 이정표가 되어 드립니다.
핵심 해설
갈래
고전가사, 유배가사, 충신연주지사
주제
유배당한 신하의 억울함과 임금을 향한 변함없는 충정
표현
천상계 설정, 여성 화자, 역사적 고사와 자연물로의 변신
‘만분(萬憤)’이라는 제목
‘만분’은 만 갈래로 쌓인 분함이라는 뜻입니다. 화자는 자신의 억울함을 정치적 언어로 직접 폭발시키는 대신, 하늘에서 쫓겨난 존재와 임에게 버림받은 여성의 목소리로 바꾸어 토로합니다.
「사미인곡」이 물려받은 것
| 「만분가」의 표현 | 「사미인곡」으로 이어진 방식 |
|---|---|
| 옥황상제와 백옥경 | 임금을 천상적 존재로 형상화함 |
| 임과 헤어진 여성 화자 | 여성의 목소리로 연군의 정을 표현함 |
| 임의 옷을 지으려는 마음 | 임을 위한 옷과 정성의 이미지로 이어짐 |
| 소나무·학·매화로의 변신 | 죽어서라도 임에게 닿으려는 소망을 드러냄 |
| 닿을 수 없는 천상과 지상 | 임과 화자 사이의 단절과 그리움을 공간으로 표현함 |
고사 속 인물 먼저 보기
굴원
충정을 인정받지 못하고 쫓겨난 신하. 화자는 자신의 유배를 굴원의 삶에 겹쳐 봅니다.
가의
뛰어난 재능을 지녔지만 좌천된 인물. 화자의 끝없는 한숨과 억울함을 비춥니다.
공자
진나라와 채나라 사이에서 곤경을 겪은 성인. 군자도 재난을 피할 수 없음을 보여 줍니다.
도척과 백이
악인은 온전히 살고 충신은 굶어 죽는 뒤집힌 현실을 대비해 보여 줍니다.
반첩여
임금의 총애를 잃은 여인. 버림받은 여성 화자의 처지와 연결됩니다.
왕소군
고향을 떠나 변방으로 보내진 여인. 화자의 유배와 박명한 처지를 떠올리게 합니다.
작품을 읽는 네 가지 핵심
1. 임금은 옥황상제, 궁궐은 백옥경으로 바뀐다
2. 남성 사대부가 버림받은 여성의 목소리를 빌린다
3. 무오사화는 ‘장안의 무서리’로, 유배는 깊은 못으로 바뀐다
4. 소나무·학·매화로 다시 태어나려는 소망마저 임의 처분이다
「만분가」 원문과 현대어 낭독
원문의 흐름을 여섯 장으로 나누었습니다. 각 장을 펼치면 데스크톱에서는 원문과 현대어 낭독을 좌우로 비교할 수 있고, 모바일에서는 위아래로 이어서 읽을 수 있습니다.
EBS 수록 범위 안내
영상의 00:00~05:28과 10:49 이후는 교재 미수록 부분이며, 05:29부터 10:48까지가 EBS 교재 수록 부분입니다. 아래 원문은 작품 전체의 맥락을 볼 수 있도록 앞뒤 미수록 부분까지 함께 정리했습니다.
1장 · 백옥경을 향한 호소와 임과의 인연
원문
하늘 위 백옥경 열두 누각 어디인가
오색구름 깊은 곳에 자청전이 가렸으니
구만리 먼 하늘을 꿈에라도 갈동말동
차라리 죽어져서 억만 번 변화하여
남산 늦은 봄에 두견새의 넋이 되어
배꽃 가지 위에 밤낮으로 못 울거든
삼청동 저문 하늘 한 점 구름 되어
바람에 흩날려서 자미궁에 날아올라
옥황상제 향안 앞에 아주 가까이 나아 앉아
가슴에 쌓인 말씀 실컷 사뢰리라
어와 이내 몸이 천지간에 늦게 나니
황하수 맑다마는 초객의 후신인가
상심도 가이없고 가태부의 넋이런가 한숨은 무슨 일인고
형강은 고향이라 십 년을 유락하니
백구와 벗이 되어 함께 놀자 하였더니
어르는 듯 괴는 듯 남 없는 임을 만나
금화성 백옥당의 꿈조차 향기롭다
현대어 낭독
하늘 나라 서울에 있다는 열두 누각은 어디쯤일까. 오색구름이 겹겹이 쌓인 깊은 곳에 자청전이 가려 보이지 않으니, 구만리나 떨어진 저 먼 하늘을 꿈에서라도 갈 수 있을까 없을까. 차라리 죽어 억만 번 다시 태어나 남산 늦은 봄의 두견새가 되어 배꽃 가지에서 밤낮으로 울고 싶구나. 그것도 못 한다면 삼청동 저문 하늘의 한 점 구름이 되어 자미궁까지 날아올라, 옥황상제 향로 앞에 바싹 다가앉아 가슴에 쌓인 말을 실컷 아뢰리라.
아아, 이내 몸이 세상에 늦게 태어나니 나는 쫓겨난 굴원의 후신인가, 가의의 넋인가. 속상함도 끝이 없고 한숨은 또 무슨 일인가. 형강을 고향 삼아 십 년을 떠돌며 흰 갈매기와 벗이 되려 했더니, 남에게는 없는 임을 만나 금화성 백옥당에서 꾼 꿈조차 향기로웠구나.
어려운 말
- 백옥경·자미궁: 옥황상제가 사는 천상의 궁전. 현실의 궁궐을 뜻한다.
- 향안: 향로를 올려놓는 상.
- 사뢰리라: 윗사람에게 말씀드리리라.
- 초객: 초나라에서 쫓겨난 굴원.
- 가태부: 좌천된 한나라 문인 가의.
- 유락: 고향을 떠나 타향에서 떠돎.
2장 · 임의 옷과 장안에 내린 무서리
원문
오색 실 이음 짧아 임의 옷을 못 지어도
바다 같은 임의 은혜 조금이나 갚으리라
백옥 같은 이내 마음 임 위하여 지키고 있었더니
장안 어젯밤에 무서리 섞어치니
해 저문 대숲에서 푸른 옷소매도 차갑구나
그윽한 난초 꺾어 쥐고 임 계신 데 바라보니
약수 가로놓인 데 구름길이 험하구나
다 썩은 닭의 얼굴 첫맛도 채 몰라서
초췌한 이 얼굴이 임 그려 이리 되었구나
천층 물결 한가운데 백척간두에 올랐더니
난데없는 회오리바람이 벼슬길에 몰아치니
억만 길 못에 빠져 하늘 땅을 모르겠도다
노나라 흐린 술에 한단이 무슨 죄며
진나라 사람 취한 잔에 월나라 사람 웃은 탓인가
성문 모진 불에 옥과 돌이 함께 타니
뜰 앞에 심은 난초 반이나 시들었구나
현대어 낭독
오색 실이 짧아 임의 옷을 지을 수 없을지라도 바다같이 넓은 임의 은혜를 조금이나마 갚으리라. 백옥같이 깨끗한 마음을 임을 위해 지키고 있었더니 서울에 어젯밤 무서리가 몰아쳐, 해 저문 대숲에서 푸른 옷소매마저 시리구나. 난초를 꺾어 들고 임 계신 곳을 바라보니 건널 수 없는 약수가 가로놓였고 구름길도 험하구나.
임을 그리다 얼굴은 초췌해지고, 겹겹이 이는 물결 한가운데 백 자 장대 끝에 오른 듯 위태로운데 난데없는 회오리바람이 벼슬길에 몰아쳐 억만 길 깊은 못에 빠졌구나. 노나라 술이 흐린데 한단이 무슨 죄이며, 진나라 사람이 취한 것을 월나라 사람이 웃은 탓이겠는가. 성문의 불에 옥과 돌이 함께 타니 뜰 앞의 난초도 반이나 시들었구나.
어려운 말
- 오색 실·임의 옷: 임금에게 충성을 다하려는 정성과 행위.
- 장안: 중국의 옛 수도. 여기서는 서울을 뜻한다.
- 무서리: 늦가을에 처음 내리는 된서리. 무오사화의 정치적 재난을 비유한다.
- 약수: 신선 세계에 있다는 건널 수 없는 물. 임과 화자의 단절을 나타낸다.
- 백척간두: 백 자나 되는 장대 끝. 매우 위태로운 처지.
- 옥석구분: 옥과 돌이 함께 타듯 선악을 가리지 않고 재앙을 입음.
3장 · 이별과 유배길, 끊이지 않는 그리움
원문
오동잎 저문 비에 외기러기 울며 갈 때
관산 만릿길이 눈에 암암 밟히는 듯
이태백 시 고쳐 읊고 팔도의 한을 스쳐 보니
화산에 우는 새야 이별도 괴로워라
망부산 앞자락에 석양이 거의로다
기다리고 바라다가 눈 힘이 다했던가
진 꽃은 말이 없고 푸른 창이 어두우니
입 노란 새끼 새들 어미를 그리는구나
팔월 가을바람이 띠집을 걷어 가니
빈 둥지 쌓인 알이 물불을 못 면하도다
생이별 사별을 한 몸에 혼자 맡아
삼천 길 흰머리가 하룻밤에 길기도 길구나
풍파에 헌 배 타고 함께 놀던 저 무리들아
강 하늘 지는 해에 배와 노나 무사한가
밀거니 당기거니 염예퇴를 겨우 지나
만리 붕새 길을 멀리멀리 견주더니
바람에 다 날려서 흑룡강에 떨어진 듯
천지는 가이없고 물고기 기러기 무정하니
옥 같은 그 얼굴을 그리다가 말려는지고
매화나 보내고자 역길을 바라보니
대들보 밝은 달이 옛 보던 낯빛인 듯
따뜻한 봄 언제 볼까
눈비를 혼자 맞아 푸른 바다 넓은 가에 넋조차 흩어지니
나의 긴 소매를 누굴 위하여 적시는고
현대어 낭독
오동잎에 저녁 비가 내리고 외기러기가 울며 갈 때, 국경 너머 만릿길이 눈앞에 아득히 밟히는 듯하구나. 온 나라의 한을 헤아려 보니 이별은 괴롭기만 하다. 망부산 앞에 해가 저무는데 기다리고 바라보다 눈의 힘마저 다한 것인가. 꽃은 지고 창은 어두우며 어린 새들은 어미를 그린다. 가을바람이 띠집을 걷어 가니 둥지의 알도 재난을 피하지 못하고, 산 이별과 죽은 이별을 혼자 떠맡은 머리는 하룻밤 사이 삼천 길이나 희어졌구나.
거센 풍파에 낡은 배를 타고 함께하던 이들이여, 해가 지는데 배와 노는 무사한가. 험한 여울목을 겨우 빠져나왔지만 바람에 날려 북쪽 흑룡강에 떨어진 듯하다. 하늘땅은 끝이 없고 소식을 전할 물고기와 기러기는 무정하니 임의 얼굴을 그리워하다 그만두어야 하는가. 매화를 보내고 싶어 길을 바라보니 대들보의 달빛이 옛날 뵙던 얼굴 같구나. 따뜻한 봄은 언제 오며, 눈비 속에서 적신 소매는 누구를 위한 것인가.
어려운 말
- 관산: 국경의 산. 멀리 떨어진 유배지를 떠올리게 한다.
- 망부산: 남편을 기다리던 여인이 돌이 되었다는 전설의 산.
- 띠집: 띠풀로 지붕을 이은 초라한 집.
- 염예퇴: 중국 장강의 험한 여울. 유배길의 위험을 비유한다.
- 붕새: 『장자』에 나오는 거대한 새.
- 어신: 물고기와 기러기가 전한다는 소식.
- 역길: 역참을 거쳐 소식이나 물건을 전하던 길.
4장 · 옛사람에게 겹쳐 본 억울함과 부조리
원문
태상 칠위분이 옥진군자 명이시니
하늘 위 누각에서 피리를 울리시며
지하 북풍에 죽을 운명 벗기실까
죽기도 운명이요 살기도 하늘인데
진채지액을 성인도 못 면하니
죄 없이 잡힌 것을 군자인들 어이하리
오월 서리가 눈물로 어리는 듯
삼 년 가뭄도 원통함으로 일어나네
역경에 빠진 사람이 고금에 한둘이며
늙은 신하에게 서러운 일도 많고 많다
하늘과 땅 병이 들어 혼돈이 죽은 후에
하늘이 침울한 듯 관색성이 비치는 듯
나라 걱정에 원한만 쌓였으니
차라리 애꾸눈 말같이 눈감고 지내고저
넓고 아득하여 못 믿을 조물주로다
이러나저러나 하늘을 원망할까
도척은 온전히 놀고 백이는 아사하니
도척 죽은 곳이 높은가 백이 죽은 곳이 낮은가
장자의 책에 의견이 분분하네
지난날 부귀영화 생각하면 서럽구나
고향의 묘소를 꿈에 가 만져 보고
조상의 묘를 꿈 깬 후에 생각하니
구곡간장이 굽이굽이 끊어졌네
음산한 기운이 대낮에 흩어지니
호남 어느 곳이 귀신과 불여우의 집합소인지
도깨비 귀신이 우글우글하는 곳에
백옥은 무슨 일로 쉬파리의 소굴 됐나
북풍에 혼자 서서 끝없이 우는 뜻을
하늘 같은 우리 임이 전혀 아니 살피시니
목련과 국화가 향기로운 탓이던가
첩여와 소군이 박명한 몸이런가
임의 은혜 물이 되어 흘러가도 자취 없고
옥 같은 얼굴 꽃이로되 눈물 가려 못 보겠구나
현대어 낭독
하늘의 높은 신선들이 명을 받아 피리를 울리며 지하의 북풍에 죽을 운명을 벗겨 주실까. 죽고 사는 일은 하늘에 달렸지만 공자조차 진나라와 채나라에서 겪은 곤경을 피하지 못했으니, 죄 없이 잡힌 일을 군자라고 어찌하겠는가. 오월의 서리와 삼 년 가뭄도 원통한 기운에서 생긴다는데, 역경에 빠진 사람이 예나 지금이나 한둘이 아니며 늙은 신하에게 서러운 일도 많구나. 나라 걱정에 원한만 쌓였지만 그래도 하늘을 원망할 수 있을까.
큰 도적 도척은 온전히 살았고 충신 백이는 굶어 죽었으니, 도척의 무덤은 높고 백이가 죽은 산은 낮단 말인가. 옳고 그름이 뒤집힌 현실을 생각하니 지난날의 영화도 서럽다.
고향의 묘소를 꿈에서 만져 보고 깨어나 생각하니 창자가 굽이굽이 끊어지는 듯하다. 귀신과 불여우가 우글거리는 유배지에서 백옥 같은 나는 어쩌다 쉬파리의 소굴에 놓였는가. 북풍 앞에 혼자 서서 우는 뜻을 임께서 살피지 않으시니, 총애를 잃은 반첩여와 고향을 떠난 왕소군처럼 나도 박명한 몸인가. 임의 은혜는 물처럼 흘러 자취가 없고, 눈물이 앞을 가려 임의 얼굴을 볼 수 없구나.
어려운 말
- 진채지액: 공자가 진나라와 채나라 사이에서 겪은 곤경.
- 오월 서리·삼 년 가뭄: 억울한 원한이 자연의 이변을 일으킨다는 고사.
- 관색성: 감옥과 형벌의 조짐을 나타낸다고 여긴 별.
- 도척·백이: 편안히 산 악인과 굶어 죽은 충신의 대비.
- 구곡간장: 굽이굽이 서린 창자. 깊고 극심한 슬픔.
- 첩여·소군: 반첩여와 왕소군. 총애를 잃거나 고향을 떠난 여성.
- 박명: 운명이 기구하고 복이 없음.
5장 · 소나무·학·매화로 다시 태어나서라도
원문
이 몸이 녹아져도 옥황상제 처분이요
이 몸이 죽어져도 옥황상제 처분이라
녹아지고 죽어져서 혼백조차 흩어지고
빈산의 해골같이 임자 없이 구르다가
곤륜산 제일봉에 만장송 되어 있어
비바람 뿌리는 소리 임의 귀에 들리기나
오랜 세월 윤회하여 금강산 학이 되어
일만 이천 봉에 마음껏 솟아올라
가을 달 밝은 밤에 두어 소리 슬피 울어
임의 귀에 들리기도 옥황상제 처분이로다
한이 뿌리 되고 눈물로 가지 삼아
임의 집 창밖에 외나무 매화 되어
눈 속에 혼자 피어 베갯머리에 시드는 듯
달빛 아래 그림자가 임의 옷에 비치거든
가여운 이 얼굴을 네로다 반기실까
동풍이 유정하여 그윽한 향기 불어 올려
고결한 이내 생애 대숲에나 부치고저
현대어 낭독
이 몸이 녹아 없어지는 것도, 죽어 버리는 것도 모두 옥황상제가 정하실 일이다. 죽어 넋마저 흩어지고 빈산의 해골처럼 구르다가 곤륜산 가장 높은 봉우리의 거대한 소나무가 되어, 비바람이 가지를 스치는 소리라도 임의 귀에 닿았으면 좋겠다. 오랜 윤회 끝에 금강산의 학이 되어 일만 이천 봉우리 위로 솟아올라, 가을 달 밝은 밤 두어 마디 슬피 울어 본들 그 소리가 임에게 닿는 것마저 옥황상제의 처분이로구나.
맺힌 한이 뿌리가 되고 눈물이 가지가 되어 임의 창밖에 한 그루 매화로 서고 싶다. 눈 속에서 홀로 피어 달빛에 드리운 그림자가 임의 옷에 비친다면, 임께서 이 가여운 얼굴을 알아보고 반겨 주실까. 봄바람이 매화 향기를 불어 올려 주니 고결한 이내 생애를 대나무숲에나 맡기고 싶구나.
어려운 말
- 옥황상제 처분: 자신의 생사와 소망을 임금의 결정에 맡기는 태도.
- 혼백: 사람의 넋.
- 만장송: 매우 높고 큰 소나무.
- 윤회: 죽고 다시 태어나는 일을 되풀이함.
- 동풍: 봄바람.
- 소나무·학·매화: 고결함과 충절을 드러내면서 임에게 닿으려는 변신의 대상.
6장 · 궁궐을 향한 마지막 질문
원문
빈 낚싯대 비껴들고 빈 배를 혼자 띄워
한강 건너 저어 궁궐에 가고 지고
그래도 한 마음은 궁궐에 달려 있어
누추한 곳에서 임 향한 꿈을 깨어
한 점 서울을 눈 아래 바라보고
그릇하든 옳게 하든 이 몸의 탓이던가
이 몸이 전혀 몰라 하늘길 막막하니 물을 길이 전혀 없다
복희씨 육십사괘 천지 만물 생긴 뜻을
주공을 꿈에 뵙고 자세히 묻고 싶네
하늘이 높고 높아 말없이 높은 뜻을
구름 위에 나는 새야 네 아니 알겠더냐
어와 이내 가슴 산이 되고 돌이 되어
어디어디 쌓였으며 비가 되고 물이 되어
어디어디 울며 갈까
아무나 이내 뜻을 알 이 곧 있으면
백 년을 사귀면서 만세를 함께하리라
현대어 낭독
빈 낚싯대를 비스듬히 들고 빈 배를 혼자 띄워 강을 건너 궁궐로 가고 싶구나. 내 마음은 여전히 궁궐에 매달려 있어 누추한 유배지에서 임을 향한 꿈을 깨고 나면, 한 점처럼 보이는 서울을 바라본다. 내가 그릇했든 옳았든 이 모든 일이 내 탓이란 말인가. 하늘의 뜻은 아득하고 물을 길도 없으니, 복희씨의 육십사괘에 담긴 세상의 이치를 주공에게라도 자세히 묻고 싶구나.
말없이 높기만 한 하늘의 뜻을 구름 위의 새는 알고 있지 않겠느냐. 아아, 이내 가슴은 산과 돌이 되어 어디에 쌓이며, 비와 물이 되어 어디로 울며 흘러갈까. 누구든 이 뜻을 알아주는 사람이 있다면 백 년을 사귀고 만세토록 마음을 함께하리라.
어려운 말
- 가고 지고: 가고 싶구나.
- 복희씨 육십사괘: 복희가 만들었다고 전하는 역의 예순네 괘. 우주의 원리를 상징한다.
- 주공: 유교적 이상 정치의 모범으로 여겨진 인물.
- 하늘길: 하늘의 뜻과 이치.
- 만세: 아주 오랜 세월.
정리 포인트
- 「만분가」는 조위가 1498년 무오사화로 유배된 뒤 지은 우리나라 최초의 유배 가사입니다.
- 제목 ‘만분’에는 만 갈래로 쌓인 화자의 억울함과 분노가 담겨 있습니다.
- 임금과 궁궐을 옥황상제와 백옥경으로 바꾸는 천상계 설정이 작품 전체를 이끕니다.
- 남성 사대부가 임과 헤어진 여성 화자의 목소리를 빌려 연군의 정을 표현합니다.
- 무오사화와 유배의 충격은 무서리, 회오리바람, 깊은 못과 같은 이미지로 우회됩니다.
- 굴원·가의·공자·백이 등의 고사는 선한 인물이 고난을 겪는 부조리한 현실을 강조합니다.
- 소나무·학·매화로 다시 태어나서라도 임에게 닿고 싶다는 변신 모티프가 나타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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